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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er friends or Swallow friends...

Jesus said, "Ye are they which have continued with me in my temptations"(Luke 22:28) 이 부분을 여름친구와 제비같은 친구로 풀어내는 상상력에 감탄하게 된다.. "Some friends are like the Swallow, they come in the Summer and sing with you, but when it is Winter, cold and frost, then farewell, they must seek a warmer climate. These are summer friends, while the summer of comfort, the summer of riches, the summer of outward content..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

1.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 이는 둘 사이의 친밀한 연합을 나타냅니다. 사도가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관계를 머리와 몸으로써 말하는 데에는 특별한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친밀성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관계 가운데 머리와 육체 사이만큼 친밀하고 민감한 결합이 없습니다. 얼마나 친밀합니까? 어떤 한 사람을 머리와 몸으로 구분을 해서 다르게 보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냥 한 사람으로 보는 것이죠. 그리스도와 교회는 그보다도 더 밀접하고 견고하게 결합되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의 머리는 몸과 분리될 수도 있죠. 물론 그렇게 되면 죽게 됩니다만. 그러나 그리스도와 몸인 교회는 결코 분리될 수 없고, 분리되지 않습니다. 로마서 14:8에서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

아내는 남편의 최고의 위로

아내는 남편의 최고의 위로"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에게 아내를 주신 장면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와가 창조되기 전 아담에게는 2장 1절에서 이미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천지만물을 비롯하여 그 안에 공중에와 육축과 모든 짐승들을 주셨습니다. 이런 모든 만물들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주신 복이고 삶의 위로의 성격을 갖습니다. 그런데도 아담에게는 “돕는 베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담에게 아내의 존재란 그런 모든 피조물로도 얻을 수 없는 어떤 돕는 성격, 위로의 성격, 복의 성격이 있었다는 겁니다. 즉, 아내는 남편의 최고의 위로입니다. 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황소나 당나귀, 양들 종, 심지어 자식들조차도 욥에게 최고의 위로의 성격은 아니었고 아내가 바로 그런 자리였습니다. 아마 이런 의..

[펌글]진화론에 대한 기독교적 시각은 무엇인가?

아래의 글은 진화론에 대한 기독교적 시각에 대하여 지난해 송인규 교수의 강의안이고,... 두 번째 글은 이 강의안에 대한 해명성 글로서 개혁신보에 게제된 동일 저자의 글이다. ============================================== 그리스도인은 진화/진화론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I. 서론 (1) 이 주제를 다루기가 쉽지 않은 세 가지 이유 (i)“진화”라는 용어의 다의성(多義性). (ii)전문가들이 이해하는/주장하는 진화론과 문외한의 입장에서 가진 피상적 지식 사이의 커다란 간극(gap). (iii)“진화,” “진화론”에 대한 편견/오해/거부 반응. (2) 이 강좌의 목표 (i)상기한 어려움을 다소 완화시키는 계기를 마련함. (ii)“진화,” “진화론” 및 연관 주제에 대해..

기타 2011.03.29

신앙의 정직성

신앙의 정직성딤후 3:5,13 “거짓없는 믿음으로 ... 들은 바 바른 말을 본 받아 지키고...”“나의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내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바울 사도가 디모데를 생각하면서 고백한 말이다. 그 사람만 생각해도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고, 그 사람 만나 볼 것을 생각하면 기뻐지는 그러한 사람으로 디모데는 알려졌다. 그러나 단순히 어떤 한 인물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섬기기에 적합한, 교회에 가장 필요한 인물로서 교회를 사랑하며, 교회를 위해 애쓰는 이로써 그렇게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과 뗄 수 없이 더 근본적인 어떠한 것을 기억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거짓 없는 믿음이다. 주님의 교회를 생각하게 될 때..

"성령을 모독하는 죄"

성령을 모독하는 죄에 대하여...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제 7 문은 인간의 죄에 대해서 말한다. 죄에 대한 여러가지 구분법을 말하던 중.. 성령을 모독하는 죄와 관련된 부분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 사하심을 얻지 못하는 죄 - 즉, 성령을 모독하는 죄로서 사망에 이르는 죄 - 가 있고, 사하심을 얻을 수 있는 죄 - 즉, 성령을 모독하는 것이 아닌 죄로서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 - 가 있다. 죄를 이렇게 구분하는 예가 성경에 언급되어 있다(마 12:31; 막 3:29; 요일 5:16). 사하심을 얻지 못하는 죄, 혹은 성령을 모독하는 죄, 또한 사망에 이르는 죄는 하나님의 진리를 시인하고 또한 성령의 증언을 통하여 충실하게 빛을 받아 납득하였으면서도 자신의 뜻과 행위로서 사악하게 그 진리를..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

막4:33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저희가 알아들을 수 있는 대로 말씀을 가르치시되" 하 나님의 뜻을 알게 하실 때 주님은 한 번에 충만하게 가르쳐주시지 않는다. 비록 사람의 마음이 성령에 의해서 변화되고 거룩케되었을지라도, 그래서 하나님에 대해서 알게되었을지라도 그 지식은 즉시 충만해지지 않는다. 긴 시간과 깨달음이 필요하다. E. 엘튼은 이렇게 설명한다. "그분의 뜻을 아는 지식은 좁은 입구로 인해 방울 방울 떨어뜨려서 집어넣어야 들어갈 수 있는 작은 약병이나 유리그릇과 같다" 내가 예전에 알던 어떤 겸손한 집사님에게 자식같은 학생들 앞에서 신앙에 관한 교훈을 주십사하고 부탁을 드렸을 때, 그분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 그분의 은혜는 콸콸 쏟아지는 수도꼭지 같은 데, 그 물을 받는 내 그릇은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