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4

아. 칼빈!

... 다음은 임종직전에 그의 개혁의 동지였고, 친구였던 파렐에게 보낸 편지다.. "안녕히 계십시오. 나의 가장 좋은 신실한 형제여! 당신이 내 뒤에 이 세상에 남아 있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니. 우리의 우정을 기억해 주십시오. 우리의 우정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유익했으므로. 하늘에서 그 상급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로 인해 당신이 낙심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숨을 쉬기도 힘이들어. 매순간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위해 살다가 죽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분은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살아서나 죽어서나 상급이 되십니다. 다시 한 번 내 형제에게 작별을 고합니다. " *************** (1564년 5월 2일.) .... 오늘 오후 교회사 공부 중 마음에 남아있는 글귀..

하나님의 사람 하인리히 블링거 !

취리히의 개혁자 하인리히 블링거. 그는 가장 헌신적인 목회자로 알려졌다. 모든 면에서 상담과 위로를 베풀었고 도시에 전염병이 창궐했을 때 헌신적 노력을 다했다. 아주 적은 수입으로 과부들, 고아, 이방인들과 망명자들에게 그들이 어떤 신앙을 가졌든지 상관치 안고 음식, 의복, 돈을 나누어 주었다. 그는 동료로부터도 극찬을 받았다. 베자는 "모든 기독교 교회들을 돌보는 만인의 목자"라 했고, 펠리칸은 "하나님의 영광과 영혼 구제를 위해 하늘로부터 은사를 풍성하게 받은 하나님의 사람"이라 했다. 영 국의 여왕 메리의 폭정으로 대륙으로 피신해 온 개혁자들을 극진히 대접했다. 뿐만 아니라 돌아간 그들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었다. 글로스터 주교 후퍼는 블링거에게 보낸 서신에서 "존경하는 아버지이자 안내자"라고 표..

16세기 후반 프랑스 개혁파의 비극 : 성 바돌로매 학살 사건

성 바돌로매 학살 사건 1572년 8월 24일 로마 가톨릭 교도인 프랑스 왕의 여동생과 개혁교회 지도자인 헨리 왕자의 결혼식이 예정되었다. 구교와 신교 양진영의 사람들은 모두 이전의 반목과 투쟁을 종식하고 이제 평화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가톨릭 진영에서는 이미 위그노들에 대한 대학살이 계획되어 있었다. 결혼식에는 양진영의 지도자들이 대부분 참여했었는데 생 제르멩 교회의 종소리를 신호로 위그노들에 대한 살육이 시작되었다. 이후 1주일 동안 대략 7만명 정도가 죽임을 당했다. 특히 위그노들의 지도자들 대부분이 이때 살해되었기 때문에 프랑스에서 개혁신앙을 가진 성도들은 극심한 혼란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이런 피의 역사들은 오늘날 프랑스에서 특히 더 개혁교회의 흔적들을 찾기가 어려운 그런 배경들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