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의 자필 예정론
[CO IX, 713-4]
번역 : 김영규 교수(개혁주의연구소 소장)
" 첫 인간의 창조 전에 하나님께서 영원한 의논에 의해서 전 인류에 대해서 무엇을 행하시고자 하시는지를 정하셨다(Ante creatum primum hominem statuerat Deus aetemo consilio quid de toto genere humano fieri vellet).
이런 감추어진 하나님의 의논으로 말미암아 아담이 자신의 순수한 상태로부터 타락하였고 그의 결함 때문에 그의 모든 후손들이 영원한 죽음의 진노 가운데 몰았다(Hoc arcano Dei consilio factum est ut Adam ad integro naterae suae statu degiceret ac sua deficeret ac sua defectione traheret omnes suos posteros in reatum aetemae mortis)
택자들과 유기자들 사이의 구별은 같은 성정에 의존하고 있다. 이는 어떤 이들을 구원에 이르도록 택하셨고 다른 이들을 영원한 멸망으로 정하셨기 때문이다(Ab hoc eodem decreto pendet discrimen inter electos et reprobos: quia alios sibi adoptavit in salutem, alids aeterno exitio destinavit)
비록 하나님의 공의의 징벌의 그릇은 유기자들이고, 반면 택자들은 긍휼의 그릇일지라도, 구별의 원인은 의의 최고 규범인 자신-하나님-의 유일한 의지 이외에 하나님 안에서 찾을 수 있는 다른 것이 아니다.(Tametsi iustae Dei vindictae vasa sunt reprobi, rurusum electi vasa misericordiae, causa tamen discriminis non alia in Deo quaerenda est quam mera eius voluntas, quae summa est justitiae regula).
비록 택자들이 믿음으로 채택의 은혜를 받지만, 선택은 믿음에 의존하지 않고 시기와 순서에 있어서 그것에 선행한 것이다(Tametsi electi fide percipiunt adoptionis gratiam, non tamen pendet electio a fide sed tempore et ordine prior est)
믿음의 시초와 보존은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선택으로부터 흐르는 대로,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 이외에 다른 자들이 참으로 믿음 안에서 조명받거나 중생의 영을 받지 못한다. 유기자들은 오히려 필연적으로 자신의 눈이멀음 가운데 머무르거나, 그들 안에 없었던 것처럼 믿음의 부분으로부터 떨어져 나간다(Sicut initum et perseverantia fidei a gratuita Dei electione fluit, ita non alii vere illuminantur in fidem, nec alii spiritu regenerationis donantur, nisi quos Deus elegit: reprobos vero vel in sua caecitate manere necesse est, vel excidere a parte fidei, si qua in illis fuerit).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받았을지라도, 순서에 있어서 주께서 우리를 자신의 것들로 결정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지체로 삼는 일보다 앞선다.(Tametsi in Christo eligimur, ordine illud prius est ut nos Dominus in suis censeat, quam ut faciat Christi membra).
비록 하나님의 의지가 모든 것들의 첫 그리고 최고의 원이이고 하나님께서 마귀와 모든 불신자들을 그의 자유의지대로 복종케하실지라도 하나님이 결코 죄의 원인이라고 부를 수 없고 악의 저자이거나 잘못에 대한 죄책이 있는 것이 아니다(Tametsi Dei voluntas summa et primum est rerum omnium causa, et Deus diabolum et impios omnes suo arbitrio subiectos habet, Deus tamen neque peccati causa vocari potest, neque mali autor, neque nlli culpae obnoxius est)
비록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 참으로 미워하시고, 인간들 안에 있는 불의에 속한 것은 무엇이나 불쾌해 하시기 때문에 진노하실지라도, 그의 순수한 허락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역시 뜻과 신비한 성정에 의해서 인간의 모든 일들을 다스리신다(Tametsi Deus peccato vere infensus est et damnat quidquid est iniustitiae in hominibus, quia illi displicet, non tamen nuda eius permissione tantum, sed nutu quoque et arcano decreto gubemantur omnia hominum facta).
비록 마귀와 유기자들은 하나님의 배역자들이고 도구들이며 그의 신비한 심판으로 종결될 것이지만, 하나님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그렇게 그들 안에서 그리고 그들을 통해서 역사하셔서 어떠한 것도 그들의 타락의 부패성으로부터 축소되도록 하지 않았다. 이는 비록 그 방식은 종종 우리에게 감추어져 있을지라도, 그들의 악이 선한 목적에 바르고 정당하게 유익되게 하시기 때문이다(Tametsi diabolus et reprobi Dei ministri sunt et organa, et arcana eius iudicia exsequuntur, Deus tamen incomprehensibili modo sic in illis et per illos operatur ut nihil ex eorum vitio labis contrahat, quia illorum malitia iuste reteque utitur in bonum finem, licet modus saepe nobis sit absconditus)
모든 것들이 그의 원함과 질서에서 일어난다고 하여 하나님이 죄의 저자라고 말하는 자는 미련하고 중상하는 일이다. 이는 그들이 인간의 명백한 부패와 하나님의 신비한 심판 사이를 구별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Incite vel calumniose faciunt qui Deum fieri dicunt autorem peccati, si omnia eo volente et ordinante fiant: quia inter manifestam hominum pravitatem et arcana Dei iudicia non distinguu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