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 전통

개혁신학의 전망

소박한 나그네 2010. 9. 10. 23:55

개혁신학의 전망

김성수 교수(합신교수)

개혁이란 비록 혁명이란 말처럼 기존질서의 파괴적, 극단적, 폭력적 부정 내지 전복의 의미를 갖지는 않을지라도 기존질서나 상태에서 탈피하여 새 질서를 확립하는 무언가 신기원을 마련하는, 이제껏 없었던 굉장한 그 무엇을 성취한다는, 다시 말하면 일종의 완화된 형태의 혁명을 의미한다. 그리고 개혁을 주도하는 개혁자라고 하면 대개 혁명가적이며 투사적인 모습을 연상하게된다. 물론 교회내의 개혁에서도 새로운 출발의 의미나 이를 위한 확고한 결단의 의미를 전혀 배제할 수는 없을지라도 흔히 일반사회에서 이해되는 대로의 개혁이나 개혁자의 모습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특히 이제껏 아무도 하지 못했던 것을 성취하려고 하는 생각이나 이를 위한 투쟁일변도의 영웅주의적인 자세는 교회내의 개혁에서는 지양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교회에서의 개혁은 근본적으로 “잃었던 것을 다시 찾는 회복의 의미, 곧 벗어났던 바른 길에로의 복귀의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된다. 만일 개혁의 의미가 이처럼 정상적인 상태에로의 회복을 뜻한다고 한다면 개혁이란 이제껏 없었던 굉장한 무엇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완전한 성결에 이르지 못한 우리에게 있어서 지극히 정상적이며 항상 있을 수 있고, 또 있어야 할 “일상적인 행위“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개혁의 의미가 이러할진대 개혁의 출발점은 새로운 미래에 대한 거창한 Vision의 제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백성된 우리에게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가?”라는 지극히 평범한 질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바로 우리가 살아야 할 바른 삶이요, 정상적인 삶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게 원하시며 요구하시는 뜻이 성경에 계시되어 기록되어있다”라고 한다면 개혁이란 다름 아니라 성경을 연구하여 하나님의 뜻을 배우고 확인하는 것과 그 뜻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목회자는 바로 신자의 삶 속에서 이런 것이 이루어지도록 돕고 힘쓰는 자이며, 목회자를 훈련하는 신학교 역시 성경을 배우고 가르치며 성경대로 사는 것을 지도하는 것이 가장 정상적이며 일상적인 직무인 동시에 개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개혁이란 말을 사용할 때 조금 조심스런 태도가 요구된다고 본다. 왜냐하면 “개혁”이란 말의 통속적 의미가 특수한 사명을 부여받은, 그리하여 어떤 무리에서 구별된 별다른 집단을 암시한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데 비해서 실상 개혁의 의미를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해할 경우, 개혁이란 어느 특정집단에만 적용될 수 없고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보편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교회의 개혁은 합신을 통해서 기대라 수밖에 없다는 말을 들을 때는 모골이 송연해 지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칭찬과 동시에 부담을 주는 요구는 우리로 하여금 교만케 하거나 아니면 좌절케 하여 쓰러지게 만들뿐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개혁이라고 하는 것은 “누구나 다 같이 하나님 앞에서 바로 배우고 바로 살자”는 지극히 평범한 주장 이상도 이하도 아니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처럼 지극히 정상적이고 평범한 주장을 지극히 비상하고 심각한 것인 것처럼 외쳐야 하는 오늘의 교회 현실에 대해서는 별도로 말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교회현실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개혁자의 자세는 지극히 평범한 자세, 하나님의 말씀 앞에 두려워 떨며 끊임없이 나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나 역시 이러한 현실을 초래한 자 중의 하나라고 하는 공동 책임의식을 느끼며 함께 아파하는 자세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절망 중에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가운데 그의 인도하심을 겸손히 기다리는 자세이어야 할 것이다. 한 소망 가운데서 날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삶 속에 실현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우선적으로 나에게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개혁이 나 자신에게서부터 시작되어야할 이유는 하나님 말씀 앞에 우리는 모두가 꼭 같이 부족한 자이기 때문이다. 개혁은 남을 비난하고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포용적이며 겸손한 자세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부조리나 비리와 적당히 타협하며 허용하는 겸손과 포용이 아니라, 나 자신과 상대방을 우리 모두를 바로 일으켜 세우려는 깊은 사랑을 수반한 겸손과 포용이어야 할 것이다.

한마디로 개혁이란 현란한 구호와 선전의 외침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진실된 삶의 자세를 회복하려는 몸부림이어야 할 것이다. 요란한 외침보다는 오히려 무언의 행동과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 비록 이 점에 있어서 늘 실패자로 나타나 보이게 될지라도 우리가 취해야할 자세라고 본다. 특히 우리가 조심해야할 것은 우리가 특별히 구별된 모임이라는 이상한 긍지, 긍지를 지나 교만하기까지 한 자세를 경계해야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를 향한 교계의 바램과 요구를 차라리 잊어버리는 것이 나을 것이다. 한국교회 앞에 무엇인가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때로는 전혀 근거 없는 자존심과 긍지와 교만한 마음을 가지며 때로는 깊은 좌절과 절망을 느끼는 무익한 일에서 쓸데없는 부담감에서 벗어나는 것이 유익하리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오히려 우리가 겸손히 하나님 앞에 참되게 사는 것을 배우는 날, 교계의 바램과 요구는 자연히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정상적인 그리스도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점을 늘 유의해야할 것이다. 어떤 특수한 사람에게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신자에게 요구되는 바로 이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부단히 노력해야할 것이다. 왜냐하면 정상적인 평범한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하는 것은 그 말이 자칫 암시하기 쉬운 대로 참으로 평범한 무사안일한 모든 것이 저절로 되는 삶을 듯 하는 것이 아니라, 피 흘리기까지 자신의 죄와 투쟁하며 온 힘을 다해 하나님의 뜻을 삶 속에 실현하는 심각하고 진지한 삶을 뜻하기 때문이다.우리의 미래의 Vision은 특별한 그리스도인, 특별한 목회자가 아니라 바로 이 정상적인 그리스도인, 정상적인 목회자이어야 할 것이다.

(1986.11.29. 합동신학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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