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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결혼'은 무서운 죄악이다

소박한 나그네 2010. 9. 15. 15:06

‘계약결혼’은 무서운 죄악이다

 

< 이광호 목사, 실로암 교회 >, 기독교 개혁신보 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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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폐적인 것들 토론의 주제가 될 수 없어”

 

우리시대에는 과거에 없던 희한한 용어들이 끊임없이 양산되고 있다. 그 가운데는 인간의 고유한 가치관을 뒤흔드는 위험한 용어들이 포함되어 있다. 인생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결혼에 연관된 문제에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다.

 

언 젠가부터 우리 주변에 ‘계약결혼’이라는 말이 떠돌더니, 점차 사람들의 삶 속에 다양한 형태로 침투해 들어가고 있다. 항간에는 남녀가 결혼을 하기 전 일정기간 미리 동거해 보는 것이 좋다는 어처구니없는 풍조가 활기를 띠고 있다. 사회가 그것을 마치 적법한 것인 양 용납해야 한다는 인상을 준다.

 

얼마 전에는 공영방송에서, 결혼을 위한 탐색으로서의 혼전동거에 관한 토론(?)이 있었다. 정식 결혼을 하기 전에 남녀가 함께 살아본 후 결혼여부를 결정짓는 것에 대한 문제였다.

공영방송이 그 위험한 풍조를 공론화해 선전이라도 하듯 주제화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악하기 그지없는 세태가 ‘문화의 옷’을 입고 공적인 토론거리로 선정되었다는 사실이 놀라운 따름이다.

 

사회를 건전한 방향으로 선도해야 할 의무가 있는 공영방송이 도리어 시민들의 근본 가치관을 뒤흔들어 놓고 있다. 이는 ‘살인’이 과연 죄가 되는가 하는 문제를 두고 토론을 벌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가 분명히 인식해야 할 바는 윤리를 벗어난 인간의 악한 행동이 그런 식의 토론 주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인간들에게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분명한 죄악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에 출연한 인사들 가운데 상당수는 먼저 동거를 해보고 결혼여부를 결정짓는 것이 권장할 만하다고 반응했다. 나아가 우리나라의 과반수나 되는 젊은이들이 정식결혼 이전에 동거해 보는 것을 긍정적으로 본다고 한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혼전동거에 동조하는 부모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토론 중 인터뷰를 한 부모들 가운데 자식이 먼저 이성과 살아본 후 결혼하는 것이 괜찮다고 여기는 자들이 소개 되었다.

 

그 들의 논리에 의하면 정식으로 결혼해서 살다가 성격이 맞지 않아 이혼하는 고통을 겪을 바에는 먼저 동거해본 후 결혼여부를 결정짓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세상에 그런 말도 안 되는 논리가 도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결혼 전 동거할 때는 괜찮았지만 정식으로 결혼한 후 문제가 발생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결 혼을 위한 탐색으로써 동거했으나 대상이 시원찮다면 또다시 동거할 다른 이성을 찾아 나설 것인가? 성경에 비추어볼 때 그것은 인륜을 파괴하는 무서운 죄악이다. 그렇게 하는 개별적인 행동 자체가 범죄일 뿐 아니라 그것을 방치하는 사회는 윤리 파괴와 더불어 성범죄를 조장하는 악한 역할을 하게 된다.

 

우 리가 진정으로 염려해야 할 바는, 교회에 속한 어린 청소년들이 그로부터 악영향을 받게 될 우려가 없지 않다는 사실이다. 모든 인간들은 나름대로 성적인 유혹을 받게 된다. 그것은 타락한 인간의 본능에 기인한다. 따라서 인간들은 죄에 대해 여간 민감하지 않으면 자신의 욕망을 정당화시키려는 경향성을 띠게 된다.

 

이 는 하나님의 자녀라 할지라도 항상 깨어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그런 위험한 상황에 처한 우리시대의 교회는 맡겨진 청소년들을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 교회의 지도자들이 외형에 몰두하고 있는 동안, 말씀을 통한 올바른 신앙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아이들의 정신세계는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우 리는 그런 퇴폐적인 것들이 결코 토론의 주제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사회가 그런 식으로 흘러가면 인간의 윤리적 가치는 송두리째 뒤흔들리게 된다. 타락한 인간들은, 타인을 물리적으로 헤치지 않는다면 어떤 것이든 용납되지 못할 것이 없다는 식의 논리를 펼칠 것이 분명하다.

 

우 리 시대에는 다음 세대를 진정으로 염려하는 지도자와 건전한 지성인들이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윤리와 도덕이 무분별하게 파괴되어도 마음 속 깊이 개탄하는 자가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은 그렇다 치고라도 기독교 지도자들의 대응 자세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다.

  

더러운 죄악이 승기를 잡고 있는 위험한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교회가 그에 대해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