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부시대에 한 인물의 신학 속에 부분적으로 오류가 있었던 까닭은 기독교 교리와 신학의 정초를 놓아가던 시기에 발생할 수 있는 한계였을 것이다.
종교개혁의 신학자들은 그러한 오류를 걸러내고 기독교 신학과 교리의 전 체계를 완성하기 위한 치밀한 싸움이 각각의 테제들을 놓고 이루어졌고 그 결과 마지막 시기에 표준문서로서 신앙고백와 요리문답, 그리고 더 나아가 성경에서 비롯된 교회정치의 원리와 모범까지 산출하였다.
그러므로 그 이후 기독교 교리는 전 체계가 거의 갖추어졌으므로 더 이상 한 개인 안에서 기독교 교리의 전체계와 다른 부분을 주장한다는 것은 교부시대의 한계처럼 변명할 수 없고, 오히려 그가 이해하고 있는 전체계에 대한 의구심을 거둘 수 없게 되었다.
그에 따라 현대에 발생하는 새로운 교리 논쟁들은 근대정신 아래에서 출발한 다양성과 상대화에서 비롯된 도전이고 충돌이며 이러한 시도는 이전 시대를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모호하게 만들고 논쟁거리로 만듦으로써 신자들을 교리와 신학을 배제하고 곧 바로 성경으로 뛰어들게 만들어 신비주의나 문자주의에 빠지게 할 수 있고 일부 지도자들이 선동하고 있다.
이것이 오늘날 신학계에서 발생하고 있는 "신학으로 신학의 부재"를 초래하게 되는 현실이 되고 있는 것 같아 우려를 금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