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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의 양심의 자유에 관하여

소박한 나그네 2016. 11. 21. 18:08

신자의 “양심의 자유”에 관하여

‘양심의 자유’에 관한 내용은 합신 헌법 제3부 교회 정치 제 1장 원리 제1조에 있습니다.

“제1조 양심의 자유


양심의 주재자는 하나님뿐이시다. 그가 신자들에게 신앙 양심의 자유를 주사 신앙과 예배에 대하여 성경을 위반하거나 이탈한 인간적 교훈이나 명령을 받지 않게 하셨으니, 그리스도인의 이 자유는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종교에 관계되는 모든 사건에 대하여 속박을 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모든 신자들은 각기 양심대로 판단할 권리가 있은즉 아무도 이 권리를 침해하지 못한다.“

각주에 있는 바와 같이 이 조문은 원래 웨스트민스터 총회(1643-1649)에서 작성된 것이 아니라 미국장로교회 뉴욕대회(1878)에서 작성한 것을 한국장로교회가 1917년 총회에서 채납했음을 밝혔습니다.

그런데 한국장로교회가 헌법을 제정할 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대소요리문답 그리고 교회정치와 예배모범을 기초로 했지만 교회정치와 관련해서는 미국장로교회법을 주로 참조하였습니다. 한국장로교회 총회는 선교사 곽안련씨를 통해서 J.A.핫지의 책 ‘What is presbyterian law’을 번역하도록 하였고 이를 토대로 장로회 교회정치를 채납하였습니다.


J.A.핫지는 그의 책에서 우리가 ‘교회 헌법의 8대 원리’라고 표현한 여덟 가지 조항들이 1788년 뉴욕/필라델피아 대회에서 작성되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 시기에 미국장로교회는 1차 부흥운동으로 인해서 Old Side와 New Side로 첫 번째 장로교 분열이 발생(1741)한 후 다시 서로의 필요에 따라 교리적 갈등과 차이를 수면아래 둔 채 재연합하였고(1758) 미국독립전쟁을 거친 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 더욱이 1787년 미국장로교회 뉴욕/필라델피아 대회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수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J.A.핫지의 책은 바로 이러한 시기에 작성되고 채택되었습니다. 장로교 표준문서를 작성했던 웨스트민스터 총회 당시의 장로교 신학으로에서 볼 때 그 신학의 내용과 정신을 반영하는데 충분했다고 보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원리편에서 제시한 양심의 자유에 관한 내용은 우리의 헌법보다 더 구체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I. 첫 번째 원리는 무엇인가?


하나님만이 양심의 주재가 되시어 신앙 혹은 예배에 관련한 문제에 대하여 혹은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는 사람의 교리와 명령으로부터 사람의 양심을 자유롭게 하셨다는 것이다.“

이어서 이 자유가 무엇인지 부연설명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의 자유는 무엇인가?

자유란 국가권력이나 교회 권력, 또는 합법적인 권력이나 어떤 합법적인 권력의 시행 그 어떤 것이라도 반대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하나님의 율례에 항거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신앙이나 예배, 혹은 교제와 관련하여 기독교 원리나 자연의 빛에 반대하는 의견을 고수하거나 펼치는 것 역시 그 권리가 아니다. 기독교인의 자유는 하나님의 뜻이 자연과 계시에 의해 알려진바 된 것처럼, 하나님께 제한 없이 온전히 순복하는 것이다. 그 결국은 원수의 손아귀에서 구원함을 받아 우리가 인생의 모든 순간에 거룩함과 의로움으로 두려움 없이 주님을 섬기는 것을 말한다.“

우리 헌법의 조항은 핫지의 원문에 비해 보다 신자들 개인의 양심의 자유가 강조되는 듯한 인상을 갖게 됩니다. 비록 “신앙과 예배에 대하여 성경을 위반하거나 이탈한 인간적 교훈이나 명령을 받지 않게 하셨으니”라는 단서를 붙였지만 나머지 다른 부분들 예컨대 “그가 신자들에게 신앙 양심의 자유를 주사”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이 자유는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종교에 관계되는 모든 사건에 대하여 속박을 받지 않는다”라든가 “모든 신자들은 각기 양심대로 판단할 권리가 있은즉 아무도 이 권리를 침해하지 못한다”는 부분은 양심의 자유가 마치 절대적인 자유행사인 것처럼 오해할 여지를 갖게 만듭니다.

이에 비해 J.A. 핫지는 ‘자유’의 정확한 지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신앙과 예배...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사람의 교리와 명령으로부터”라고 양심의 자유가 행사되는 출발점을 지적합니다. 어디까지나 이 양심의 자유는 아무런 기준 없는 자기 소견대로의 자유가 아니라 말씀에 위배되는 사람의 교리와 명령에 따르지 않을 자유의 고귀한 가치를 말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자유가 모든 면에서 절대적인 자유행사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자유란 ... 그 어떤 것이라도 반대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합법적인 질서에 반대하는 것을 “하나님의 율례(the ordinances of God)에 항거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오히려 그 자유는 “하나님께 제한 없이 순복하는 것”이며 “거룩함과 의로움으로 ... 두려움 없이 주님을 섬기는 것을 말한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점은 J.A.핫지가 이 조항과 관련하여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20장을 각주에 넣었다는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제20장의 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20. 기독 신자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
.....
2. 하나님만이 인간의 양심의 주님이시다.(약 4:12, 롬 14:4) 그러므로 사람의 양심은 신앙과 예배의 문제에 있어서,
1)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거나 거기서 이탈된 인간적인 교리나 계명에서는 벗어날 자유가 있다.(마 15:9, 23:8-10, 행 4:19,5:29, 고전 7:23, 고후 1:24
2) 그러므로 양심을 떠나 그런 인간적인 교리를 믿거나 그런 계명을 순종함은 양심의 참 자유를 배반하는 것이며,(갈 1:10, 2:4-5, 5:1, 골 2:20,22-23)
3) 그런 맹목적인 신종을 요구함은 양심 자유와 또는 이성을 파괴하는 것이다(사 8:20, 호 5:11, 렘 8:9:, 요 4:22, 행 17:11, 롬 10:17, 14:23, 계 13:12,16-17)
3.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구실로 하여 죄를 범하거나 정욕을 따름은 그 자유의 목적을 파멸시키는 행위이다. 자유의 목적은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받은 우리로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함과 의로움으로써 두려움 없이 평생 그를 섬기려는 데 있다.(눅 1:75, 갈 5:13)
4. 하나님께서 세상에 세우신 정권들과, 그리스도께서 속량해 주신 (영적) 자유는 서로 파괴할 것이 아니고 도리어 서로 보호해야 된다. 그렇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므로, 1) 그리스도인의 (영적) 자유를 구실로 삼아 합법적인 권세나 또는 그것의 합법적인 실행(국가적인 것이든 교회적인 것이든 간에)을 반대하는 자는 실제에 있어서 하나님의 제도를 반대함이다.(마 12:25, 롬 13:1-8, 히 13:17, 벧전 2:13,14,16)
2) 그런 반대적인 선전이나 운동 같은 것은 자연 계시에도 위배되고, 이미 알려진 기독교의 신앙, 예배, 행위의 원리, 또는 경건의 능력에 반대된다. 다시 말하면, 그런 그릇된 선전이나 행동은 그 성격으로 보든지 그 행위로 보든지, 교회 안에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평화와 질서를 파괴시키는 것이다. 그런 행위는 문책되어야 하며, 교회의 권징(마 18:15-17, 요 5:10-11, 롬 1:32, 고전 5:1,5,11,13, 살후 3:14, 딤전 1:19-20, 6:3-5, 딛 1:10-11,13, 3:10, 요이 10:11, 계 2:2,14-15,20, 3:9) 과 국법의 다스림을 받아야 한다(신 13:6-12, 왕하 23:5-6,9,20-21, 대하 15:12-13,16,33,34, 느 13:15,17,21-22,25,30, 사 49:23, 단 3:29, 슥 13:2-3, 롬 13:3-4, 딤전 2:2)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양심의 자유가 무분별하고 각 개인들에게 맡겨진 전횡적 자유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자유의 목적을 “하나님 앞에서 거룩함과 의로움으로써 두려움 없이 평생 하나님을 섬기려는 데 있다”고 말합니다. 실질적이든 명예로든 권위나 권한을 가진 사람이나 소위 기득권을 가진 자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해서 거룩함이나 의로움을 이유로 어떤 발언이나 말을 하는 죄를 범하기 쉽습니다. 왜냐하면 단지 사적인 이유와 이득을 관철하기 위하여 권위와 권한을 잘못 사용할 여지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두려움없이 자기들 손에 쥔 권력과 기득권의 카르텔을 이용하여 칼을 휘두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표현은 오히려 약하고 아무런 실질적 권한이 없는 사람들이 사용 할 수 있는 자유의 거룩한 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양심의 자유를 구실로 해서 합법적인 권세나 합법적인 실행을 반대하는 자는 실제에서 하나님의 제도를 반대한다고 하는 말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것은 세상권세만이 아니라 교회권세를 포함해서 하는 말입니다. 교회권세란 장로회 정치 아래에서는 치리회의 권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모든 권세가 주께로부터 나온다는 말씀(롬13:1-)을 따라 합법적이고 정당한 치리회의 권세에 모든 신자들은 순복해야 합니다. 치리회의 권세는 전횡적이거나 임의적으로 시행되어서는 안되며 이를 위하여 교회 역사 가운데 장로회 정치 원리가 공적 교회의 고백으로 채택된 것은 하나님의 보호와 섭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고백하는 장로회정치 표준문서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또한 그릇된 선전이나 행동은 성격으로 보든 행위로 보든 교회 안에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평화와 질서를 파괴시키는 것이란 엄중한 문책을 말합니다. 이단 사설이나 세속주의 사이비와 진리를 훼손시키고 무가치 하게 만드는 운동들이 그러합니다. 또한 교회 질서를 어지럽히며 치리회에 순복하지 않고 합법적이고 정당한 절차를 밟지 않고 항의하거나 혹은 교회의 문제를 사회법으로 가져감으로 그리스도의 교회에 심각한 타격과 불명예를 주는 행위는 양심의 자유를 가장 부당하고 불법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양심의 자유를 무분별하게 주장하는 자들은 이러한 신앙고백의 가르침에 경계를 삼아야 할 것입니다. 침묵하고 관망하는 사람들은 모쪼록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의 질서와 거룩성을 유지하는데에 우리 양심의 자유가 발휘될 수 있기를 견지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