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제도와 개혁정신의 본질
(www.rpress.or.kr)
김영규 목사·남포교회 협동목사
·뉴욕과학아카데미(NYAS)
·미국과학 진흥협회(AAAS)
·미국화학학회(ACS) 초청회원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실감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
교회 안에 처음 선거제도가 들어오는 문맥은 특별하다. 자치지역의 장을 주민이 선거에 의해서 뽑는 제도는 그리스 문화가 헬라 로마 사회로 발전되면서 정착된 제도이지만, 그런 순수한 선거제도는 처음부터 아직 교회에게 적용되지 못했다. 대신 구약성경에서 오래 전부터 알려진 제비뽑기 혹은 투표를 던지는 방식이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후 결원이 된 열 두 제자들 중에 하나를 뽑는데 사용되면서 선거제도가 교회 안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이런 선거 방식은 오랜 시대를 통해서 임명 방식에도 적용이 되는 선출 방법으로, 자격을 갖춘 두 사람이 추천되어 모든 출석자들이 그 선택에 참여함으로써 한 사람이 선택될 때 그 선거제도는 다수결의 원칙에 의해서 결정되는 제도임에는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그와 같은 선택방식을 택하였다는 것은 구약성경에서 여호와의 뜻을 찾는 전형적인 방식이었다는 점에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성자 하나님으로서 인간이 되셔서 사람들 사이에 출입하실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12제자를 뽑는 방식은 임명의 방식이지만, 그 주님께서 승천하신 이후에 공적으로 결원이 된 사도의 직무를 수행할 다른 이를 선정하고자 할 때는 필연적으로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아시는 주님이여 주께서 이들 둘 중에 하나인 누구를 택하실지 보이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의 때부터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동반하였던 사람들, 특히 그의 부활을 목격하였던 다른 사도들과 동일한 자격을 갖춘 사람들 중에 부활하시사 하늘에 계신 주님께서 직접 누구를 택하실 지를 아는 방식이 참석자들의 다수의 결정에 의해서 표현되었다는 점은 특별히 의미가 있다.
반면에 그런 선거행위나 그 선거에 의해서 선출된 인물이 중요하였을까에 대한 물음이 남는다. 즉 이런 선거절차는 그 당시 건물 공간에 함께 모였던 사람들이 그렇게 짧지 않는 기간 동안에 자신들의 주변에서 일어난 기적들 중 ‘부활과 승천’이라는 기적들에 대한 목격자들로서 그 진리에 대해서 증거할 특별한 사명자들을 구별하였던 절차에 불과하였기 때문이다.
이 사건에서 훨씬 중요하였던 내용은 인류 역사 앞에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진리에 대한 충격이 선거행위나 선거로 선출된 사명자들을 하나 더 해야 했던 사실이다. 따라서 투표행위(cheirotonein)에 의해서 장로 혹은 감독을 세웠다는 증거대로 사도행전 14장 이후 각 지 교회마다 온 회중이 투표행위에 의해서 임직자들을 세울 때마다 그 사실이 간과되기 쉬운 일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당연히 교회 안에서 투표행위에 의해서 이 세상에서 전혀 보상이 없는 임직자들을 세워 그들로 하여금 교회를 섬기도록 하였을 때, 그 투표행위들은 교회 안에서의 큰 잔치 중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 교회 역사를 통해서 그 사건의 중심은 물론 그런 투표행위조차도 잃어버린 역사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잘 경험하게 되었다.
교회 안에서 임직자를 세울 때, 온 회중의 투표행위가 없는 임직은 무효다는 원리가 공적으로 공인된 역사는 루터와 칼빈 등과 종교개혁자들을 통해서 지상 교회 안에 처음 시작되었지만, 그런 원리가 현실적으로 교회 안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일은 그렇게 쉽지 않아 개혁교회 혹은 장로교회라는 분파로 분리되어 겨우 보존되어 온 상태이다.
1560년대 후반과 1570년대 초반에 걸쳐 케임브리지 대학이나 옥스포드 대학의 젊은 신학도들이 장로교 운동을 일으켰을 때, 그 지도자 중 하나인 토마스 카아트라이트는 성만찬이나 전통에 대한 어거스틴의 잘못된 판단과 금식에 대한 어거스틴의 부패를 지적하면서 이미 부패들이 사도들의 시대 이후 직접 이어서 들어 왔다고 비판해 왔다.
그 비판 뒤에는 교수직을 잃고 추방당하며 외국에서 유랑자로서 살았어야 했던 그의 순교적 저항정신(‘we fear no shedding of blud’)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저항이요 최고의 개혁교회(the best reformed churches)를 향한 저항이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가 제시한 9가지 교회 개혁내용들도 중요하지만, 세세한 내용들에 있어서 오늘날 장로교회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낸 성직자들의 개혁정신에 가리워서 그 많은 개혁내용들을 잃어버린 상태이다.
모든 교회 권징과 정치는 믿음과 구원의 내용에 속한다, 목사들 사이에 그 직책에 있어서나 그 호칭에 있어서도 다른 목사들 위에 있을 수 없다, 기도는 내용에서뿐만 아니라 형식들에 있어서도 성경의 기도들과 일치해야 한다, 디모데나 디도와 같은 인물들은 목회자, 곧 주교들이지만 특별히 복음주의자들로서 그런 직책들은 선지자들처럼 더 이상 정규직이 아니다는 원리들이 그렇다.
또한 시편 찬송에 대한 개혁의식이라든지, 모든 정규적 교회 목회자들은 한 장소에 머무는 것이 필연적이라는 주장이라든지, 교회 안에 과부들도 병든 자들과 장애자들과 같이 도와야 한다든지, 장례식 모범 기도문이나 설교는 부적절하다는 입장이라든지, 말씀 교독과 말씀 설교는 구별해야 된다는 견해라든지, 성례는 말씀이 설교된 이후에 집례되어야 한다든지 등의 신학적 변증들은 장로교회 혹은 최고의 개혁교회의 신학적 정체성과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칼빈 시대에 건전한 종교개혁 정신이 제세례파 운동이나 급진주의로 비난을 받아 함께 핍박을 받았기 때문에 종교개혁자들은 그런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그렇게 어려운 싸움을 싸웠던 것처럼, 카아트라이트의 칼빈주의도 그 당시 소위 도나투스파 운동이나 카타리파 운동 혹은 퓨리탄 운동으로 비난을 받아 그런 오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와 같은 많은 변증으로 글을 썼던 것이다. 그러나 이와 달리 오늘날 그 지지자 자신들조차도 칼빈주의라는 별명을 사용하여 그 정체성을 자랑하고 있는 모순에 빠져 있는 경우 역시 그와 같은 역사적 현장을 잃어버린 경우 중 하나이다.
이처럼 많은 잃어버린 내용들 중에 가장 큰 상실은 항상 “하나님 자신과 부활 승천하시사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세계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 그 역사보다 크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www.rpress.or.kr)
김영규 목사·남포교회 협동목사
·뉴욕과학아카데미(NYAS)
·미국과학 진흥협회(AAAS)
·미국화학학회(ACS) 초청회원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실감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
교회 안에 처음 선거제도가 들어오는 문맥은 특별하다. 자치지역의 장을 주민이 선거에 의해서 뽑는 제도는 그리스 문화가 헬라 로마 사회로 발전되면서 정착된 제도이지만, 그런 순수한 선거제도는 처음부터 아직 교회에게 적용되지 못했다. 대신 구약성경에서 오래 전부터 알려진 제비뽑기 혹은 투표를 던지는 방식이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후 결원이 된 열 두 제자들 중에 하나를 뽑는데 사용되면서 선거제도가 교회 안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이런 선거 방식은 오랜 시대를 통해서 임명 방식에도 적용이 되는 선출 방법으로, 자격을 갖춘 두 사람이 추천되어 모든 출석자들이 그 선택에 참여함으로써 한 사람이 선택될 때 그 선거제도는 다수결의 원칙에 의해서 결정되는 제도임에는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그와 같은 선택방식을 택하였다는 것은 구약성경에서 여호와의 뜻을 찾는 전형적인 방식이었다는 점에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성자 하나님으로서 인간이 되셔서 사람들 사이에 출입하실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12제자를 뽑는 방식은 임명의 방식이지만, 그 주님께서 승천하신 이후에 공적으로 결원이 된 사도의 직무를 수행할 다른 이를 선정하고자 할 때는 필연적으로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아시는 주님이여 주께서 이들 둘 중에 하나인 누구를 택하실지 보이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의 때부터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동반하였던 사람들, 특히 그의 부활을 목격하였던 다른 사도들과 동일한 자격을 갖춘 사람들 중에 부활하시사 하늘에 계신 주님께서 직접 누구를 택하실 지를 아는 방식이 참석자들의 다수의 결정에 의해서 표현되었다는 점은 특별히 의미가 있다.
반면에 그런 선거행위나 그 선거에 의해서 선출된 인물이 중요하였을까에 대한 물음이 남는다. 즉 이런 선거절차는 그 당시 건물 공간에 함께 모였던 사람들이 그렇게 짧지 않는 기간 동안에 자신들의 주변에서 일어난 기적들 중 ‘부활과 승천’이라는 기적들에 대한 목격자들로서 그 진리에 대해서 증거할 특별한 사명자들을 구별하였던 절차에 불과하였기 때문이다.
이 사건에서 훨씬 중요하였던 내용은 인류 역사 앞에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진리에 대한 충격이 선거행위나 선거로 선출된 사명자들을 하나 더 해야 했던 사실이다. 따라서 투표행위(cheirotonein)에 의해서 장로 혹은 감독을 세웠다는 증거대로 사도행전 14장 이후 각 지 교회마다 온 회중이 투표행위에 의해서 임직자들을 세울 때마다 그 사실이 간과되기 쉬운 일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당연히 교회 안에서 투표행위에 의해서 이 세상에서 전혀 보상이 없는 임직자들을 세워 그들로 하여금 교회를 섬기도록 하였을 때, 그 투표행위들은 교회 안에서의 큰 잔치 중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 교회 역사를 통해서 그 사건의 중심은 물론 그런 투표행위조차도 잃어버린 역사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잘 경험하게 되었다.
교회 안에서 임직자를 세울 때, 온 회중의 투표행위가 없는 임직은 무효다는 원리가 공적으로 공인된 역사는 루터와 칼빈 등과 종교개혁자들을 통해서 지상 교회 안에 처음 시작되었지만, 그런 원리가 현실적으로 교회 안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일은 그렇게 쉽지 않아 개혁교회 혹은 장로교회라는 분파로 분리되어 겨우 보존되어 온 상태이다.
1560년대 후반과 1570년대 초반에 걸쳐 케임브리지 대학이나 옥스포드 대학의 젊은 신학도들이 장로교 운동을 일으켰을 때, 그 지도자 중 하나인 토마스 카아트라이트는 성만찬이나 전통에 대한 어거스틴의 잘못된 판단과 금식에 대한 어거스틴의 부패를 지적하면서 이미 부패들이 사도들의 시대 이후 직접 이어서 들어 왔다고 비판해 왔다.
그 비판 뒤에는 교수직을 잃고 추방당하며 외국에서 유랑자로서 살았어야 했던 그의 순교적 저항정신(‘we fear no shedding of blud’)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저항이요 최고의 개혁교회(the best reformed churches)를 향한 저항이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가 제시한 9가지 교회 개혁내용들도 중요하지만, 세세한 내용들에 있어서 오늘날 장로교회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낸 성직자들의 개혁정신에 가리워서 그 많은 개혁내용들을 잃어버린 상태이다.
모든 교회 권징과 정치는 믿음과 구원의 내용에 속한다, 목사들 사이에 그 직책에 있어서나 그 호칭에 있어서도 다른 목사들 위에 있을 수 없다, 기도는 내용에서뿐만 아니라 형식들에 있어서도 성경의 기도들과 일치해야 한다, 디모데나 디도와 같은 인물들은 목회자, 곧 주교들이지만 특별히 복음주의자들로서 그런 직책들은 선지자들처럼 더 이상 정규직이 아니다는 원리들이 그렇다.
또한 시편 찬송에 대한 개혁의식이라든지, 모든 정규적 교회 목회자들은 한 장소에 머무는 것이 필연적이라는 주장이라든지, 교회 안에 과부들도 병든 자들과 장애자들과 같이 도와야 한다든지, 장례식 모범 기도문이나 설교는 부적절하다는 입장이라든지, 말씀 교독과 말씀 설교는 구별해야 된다는 견해라든지, 성례는 말씀이 설교된 이후에 집례되어야 한다든지 등의 신학적 변증들은 장로교회 혹은 최고의 개혁교회의 신학적 정체성과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칼빈 시대에 건전한 종교개혁 정신이 제세례파 운동이나 급진주의로 비난을 받아 함께 핍박을 받았기 때문에 종교개혁자들은 그런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그렇게 어려운 싸움을 싸웠던 것처럼, 카아트라이트의 칼빈주의도 그 당시 소위 도나투스파 운동이나 카타리파 운동 혹은 퓨리탄 운동으로 비난을 받아 그런 오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와 같은 많은 변증으로 글을 썼던 것이다. 그러나 이와 달리 오늘날 그 지지자 자신들조차도 칼빈주의라는 별명을 사용하여 그 정체성을 자랑하고 있는 모순에 빠져 있는 경우 역시 그와 같은 역사적 현장을 잃어버린 경우 중 하나이다.
이처럼 많은 잃어버린 내용들 중에 가장 큰 상실은 항상 “하나님 자신과 부활 승천하시사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세계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 그 역사보다 크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