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글 긴여운/수상록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

소박한 나그네 2011. 4. 1. 13:37

1.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 이는 둘 사이의 친밀한 연합을 나타냅니다.

사도가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관계를 머리와 몸으로써 말하는 데에는 특별한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친밀성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관계 가운데 머리와 육체 사이만큼 친밀하고 민감한 결합이 없습니다. 얼마나 친밀합니까? 어떤 한 사람을 머리와 몸으로 구분을 해서 다르게 보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냥 한 사람으로 보는 것이죠. 그리스도와 교회는 그보다도 더 밀접하고 견고하게 결합되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의 머리는 몸과 분리될 수도 있죠. 물론 그렇게 되면 죽게 됩니다만. 그러나 그리스도와 몸인 교회는 결코 분리될 수 없고, 분리되지 않습니다. 로마서 14:8에서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다른 곳에서는 혼인으로 그 친밀성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라. 창세기 2장 23,4절 말씀처럼 남자와 여자가 혼인을 하게 되었을 때,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둘이 한 몸을 이룰지니라”고 하나님께서 처음 혼인을 정하셨습니다. 부부를 한 몸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둘 사이의 친밀함과 밀접함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5장에서도 이를 그대로 받아서 남편과 아내 사이의 친밀성을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관계를 비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친밀성이란 부부의 결합보다도 더 깊습니다. 왜냐하면 부부가 혼인으로 비록 한 몸이 되었을지라도 때로는 이혼을 통해서 떨어지고 그렇지 않더라도 결국 육체의 죽음을 통해서 분리되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결합은 육체적인 죽음조차도 그것을 끊을 수 없다는 것이죠. 심지어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와 사도들을 통해서 교회의 핍박과 시련은 곧 자신에 대한 것처럼 말씀하셨죠. 스가랴 2:8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를 노략한 열국으로 영광을 위하여 나를 보내셨나니 무릇 너희를 범하는 자는 그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라” 또한 사도 바울이 회심하기 전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러 다메섹으로 가던 도중에 주님을 만나서 들은 말씀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창세기 12장 3절에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 중에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라는 이 말씀처럼 머리와 몸,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우리를 어여삐 여기시는지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 이는 통일성(unity)을 나타냅니다.


그리스도는 교회라는 몸의 유일한 머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나타내는 것은 통일성 혹은 일체성입니다. 한 머리의 인도 아래에 있는 한 몸은 언제나 한 마음과 한 성정을 갖게 됩니다. 이에 대해서는 고린도전서 12장에서 너무나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한 몸에 각 지체들이 서로 화합하고 분쟁이 없이 하라고 권면하는 말씀을 읽을 수 있습니다. 각각의 역할이 있을 뿐만 아니라 약하게 보이는 부분이 도리어 요긴하고 덜 귀하게 여기는 부분들을 더욱 귀하게 여기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온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함이 없는 몸이 아름다운 육체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서 우리는 서로 사랑의 마음으로 서로를 돌아보고 정성을 기울이며, 생각과 태도에 있어서 좋은 것을 추구해야만 합니다.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당하는 것처럼 동료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몸의 한 부분이 썩어가고 있는데 전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심각한 상태에 놓였다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관심이 없어서 알지 못하는 것과 알고는 있지만 해결할 방도가 없어서 바라만 보고 있는 경우는 분명 다릅니다. 그러나 할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해보려고, 고쳐 보려고 노력해야 하고, 일체감을 이루려고 애써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그리 명하고 계신대도 꿈쩍하고 있지 않다면 그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아닌 것이죠. 빌립보서 2장 1,2절에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으라”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한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 붙어있는 같은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한 지체와 다른 지체가 서로 소통하지 못한다면 누가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고 있지 않은 것입니까? 다수의 교회 다수의 성도들이 있을지라도 성경은 모두 한 몸이라고 말합니다. 한 몸에 두 개의 머리는 기이한 괴물일 뿐입니다. 이 일치의 의무는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모든 신자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한 마음과 한 성향으로 결합하도록 서로 사랑으로 격려하고 수고해야만 합니다. 에베소서 5장 29절은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한다”고 말씀합니다.

 

교회의 구주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해서 생각해 봤을 때, 그분이 교회의 머리되심이란 얼마나 우리가 그분과 친밀한지를 그리고 견고한 연합인지를 깨닫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한 분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신 교회의 모든 지체들은 서로를 향한 사랑과 존귀히 여기는 마음을 품어야 할 것을 명령받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란 단지 어떤 종교적 행위를 붙드는 것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수 십번의 기도와 경건의 훈련이라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지체요 그 안에서 한 머리의 다스림을 받아 일치된 삶을 사는 한 몸이라는 사실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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