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 시편의 전체를 한 볼륨으로 엮은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에스라라는 견해도 있지만 확신할 수 없다. 시편의 저자는 다윗의 저작이 대부분이지만 다른 다양한 사람들도 다양한 시대에 걸쳐 기록되고 있다. 시편 90편은 ‘모세의 기도’로 기록되었고, 126, 137편은 바벨론 포로 이후에 기록된 것이다. 한편 보통 시편에 소제목이 붙여져서 저자가 누구인지를 밝히고 있는데, 혹시 기록되지 않은 것들 중에서도 다른 성경 구절에서 저자가 밝혀지는 경우도 있다.
이 첫 번째 시편은 다윗의 기록으로 판명되었다. 특별히 1편은 전체 시편의 서문과도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 전체 핵심은 하늘의 지혜를 추구함에 있어서 마음을 다 쏟는 자에게 복이 있고, 그렇지 못한 자들은 지상에서 당분간 행복하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마지막에는 더 없는 비참한 결말을 맞이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그래서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들이 참으로 복된 삶을 살도록 인도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시편은 은총으로 시작해서 은총으로 마치고 있다.
교훈은 두 가지로 구별되고 있다. ‘복 있는 사람의 행실과 악인의 결말’이다.
I. 복 있는 사람에 관하여(1-3)
1. 부정적으로, 조심하고 피해야 할 것.
2. 긍정적으로, 붙잡고 따라 행해야 할 것.
3. 복의 성격에 대하여
1. 행하지 않음으로서 입증되는 복을 말한다. 세 단계로 나눈다.
먼저 ‘꾀를 좇지 않고’, ‘길에 서지 않고’, ‘자리에 앉지 않는’ 자다. 한 마디로 복 있는 사람은 세상의 어떤 부요와 명예와 쾌락을 따라 살지 않고 그것을 얻고자 구하지도 않고 자신의 자리를 잘 지키는 자다. ‘좇거나 서거나 앉는다’는 말씀은 어떤 한 두 가지 행동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특히 ‘꾀’라는 말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악을 말한다. 사람들은 실제 행동으로 드러나기까지 마음 속에 이미 뜻을 품고 계획하게 된다. 그러므로 더 근본적인 악의 성격을 갖고 있는 것이다. 비록 우리가 어떤 악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을라도(욥 21:16 ‘악인의 계획은 나와 판이하니라’) 우리는 가르치고 지도하는 자리에 있을 때에 사람들의 내면적인 죄에 대해서 지적하고 고쳐야할 의무가 있다. ‘길’은 무엇일까? 이것은 습관적인 생활 방식이나 양식이다. 습관은 오랫동안의 시간에 걸쳐서 습득되는 것이다. 그만큼 자신을 돌아보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그런만큼 고치기가 어렵다. 사람은 누구든지 하늘의 일에는 게으르지만 땅의 일에는 부지런한데 신자들도 이런 점에서는 오래된 습관을 가질 수 있다. ‘앉다’는 말은 말 그대로 자리에 앉아 요지부동한 고집스러움을 뜻한다. 앞의 두 단계가 지속이 된다면 나중에는 절망적인 완고함을 가져오게 된다. 이 나쁜 행실을 찬성하는 것을 구하려는 악한 사람들의 사악한 설득에 의해서 통제받지도 않는다.
2. 행함으로서 드러나는 복에 대해서
더 적극적인 차원에서 복 있는 자의 삶의 태도를 말한다. 그것은 특별히 즐거워 하는 것이다. 앞서는 모든 즐거움과 쾌락을 버리라고 했지만 여기서는 즐거워 하라는 것이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 하라. 이것은 우리는 오직 말씀에 의해서 교정을 받으며, 거기에서 위로와 행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즐거움은 주야로 묵상하는 데 있다. 읽고, 들음으로서 신앙의 체계를 세우는 일이다. 마지 못해서 억지로 순종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신다.
3. 그의 복의 성격에 대하여
다윗은 그러한 복들에 대해서 나무의 비유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다. 세 가지로 말한다. 첫째,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다. 둘째,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는다. 셋째,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는다.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는 언제나 생기와 부요함을 유지하게 된다. 이것은 신자들이 세상에서 번성하게 될 것을 뜻하지 않는다. 이것은 영적인 부요함을 말한다. 겔 31:3 “물들이 그것을 기르며 깊은 물이 그것을 자라게 하며 강들이 그 심긴 곳을 둘러 흐르며 보의 물이 들의 모든 나무에까지 미치매” 먼저 “심겨진 나무”라 했다. 이것은 ‘복’이란 처음부터 우리의 것이 아니라 ‘심겨진 것’ 곧 하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은 것을 말한다. 둘째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는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몸이다. 모든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몸이다. 다른 말로는 그리스도에게 접붙여진 가지라고 성경이 말했다. 아가서 4:16 “너는 동산의 샘이요 생수의 우물이요 레바논에서부터 흐르는 시내로구나”라고 그리스도에 대해서 묘사했다. 성령으로 말미암은 중생과 위로와 은총을 영원히 공급받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라고 하는 시냇가에 심겨져야만 한다.
시절을 좇는다는 말은 철마다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다. 늘 열매로 풍성한 곳이다. ‘시절을 좇는다’고 한 것은 신자들이 기회를 잘 판단하고 포착해야 한다는 뜻이다. 개인의 인생에 있어서 자신에게 맡겨진 소명과 삶의 형태가 어떠해야 할지에 대하여 늘 기회를 잘 붙잡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상시에 주님의 뜻에 대하여 늘 잘 배우고 살펴야 한다.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은 하나님 앞에서 늘 성실함과 인내를 가리키는 말씀이다.
II. 악인에 관하여(4-5)
1. 악인에 대한 평가(4)
아주 간단하게 제시 되었다. ‘그렇지 않다’고만 했다. ‘복 있는 자’에 대한 설명에 대조하여 그들을 ‘메마른 땅에 심겨진 나무’로 비교하지 않았다. 이렇게 ‘그렇지 않다’고 말함으로써 악인들의 상태가 더욱 비참하게 될 것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그들을 ‘겨’에 비유하였다. 욥 21:18에 “그들이 바람 앞에 검불같이, 폭풍에 불려 가는 겨같이 되는 일이 몇 번이나 있었느냐”라는 기록과 일맥 상통한다. 본 절은 악인들이 현재 지상에서는 번창하게 잘 살 수 있지만 갈수록 그들은 쭉정이와 같은 신세가 되어서 곧 추수 때가 되면 불타버린 후 남는 재가 될 것이라는 무서운 심판을 예고하고 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일은 이 땅에서 겪게 될 어려움이 아니라 장차 영원한 심판을 두려워 해야 한다.
2. 악인들의 결과에 대하여(5)
악인들의 결과는 더 확대되고 더 비참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들의 양심은 무뎌짐으로 더욱 더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볼 수 없게 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심판이란 ‘최후의 심판’을 뜻하는 것이지만, 개인적인 종말이란 언제든 올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시간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심판을 견디지 못한다’고 선언한다. 성경의 여러 곳에서 이 말씀을 지원하고 있다.
시 5:5 “오 만한 자가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 눅 21:36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롬 14:4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 그 섰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으매 저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니라” 계 6:17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비록 현재 불경하고 경건한 자가 함께 살며, 한 왕국, 도시에 섞여 살고, 가시적 교회, 가족, 침상에 혼합되었을지라도 심판 날에는 하나님께서 양의 우리에서 염소를 구별할 것이고, 의인 중에서 악인을 골라낼 것이다. 그리고 모든 의인이 그리스도의 몸으로 확인되고 영광의 형체로 변화되어 “한 회중”으로 모이게될 때, 악인들은 마 25:41의 선언처럼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라”는 말씀을 듣게 될 것이다.
III. 이 교훈의 확증(6)
마지막 6절에서는 ‘복 있는 자’와 ‘악인’의 결과에 대해서 세 가지로 확증한다. (1) 비록 이 세상에 죄를 짓지 않고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지라도, 복 있는 사람은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이고, 믿음의 열매를 맺을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의 지도에 순종하는 자를 여기서는 ‘의인’으로 부른다.
(2) 경건한 사람들일지라도 그 삶에 있어서는 불완전하고 실패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럼에도 끝까지 그 길을 지키기로 노력하며 성실함을 잃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인정하신다’고 말씀하신다.
(3) 그러나 반대로 세상에서 스스로 만족하며 자기의 인생의 주인처럼 살아가는 자들의 마지막은 ‘망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의 눈 앞의 행복 때문에 속지 말고, 역경과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세상만사를 친히 다스리시어 혼란에서 질서를 가져오시고 고난에서 참된 복을 가져오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