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구약

욥기 묵상

소박한 나그네 2017. 8. 10. 11:58

 

욥기 14:18-22

 

18 무너지는 산은 반드시 흩어지고 바위는 그 자리에서 옮겨가고 19 물은 돌을 닳게 하고 넘치는 물은 땅의 티끌을 씻어버리나이다 이와 같이 주께서는 사람의 희망을 끊으시나이다 20 주께서 사람을 영원히 이기셔서 떠나게 하시며 그의 얼굴 빛을 변하게 하시고 쫓아보내시오니 21 그의 아들들이 존귀하게 되어도 그가 알지 못하며 그들이 비천하게 되어도 그가 깨닫지 못하나이다 22 다만 그의 살이 아프고 그의 영혼이 애곡할 뿐이니이다

 

14장은 처음에 말한 바와 같이 “여인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생애가 짧고 걱정이 가득하며....”로 시작하는 인생의 연약함과 유한함에 대한 논지가 줄곧 전체를 지배하고 있으며 마지막까지 잘 이어가고 있습니다. 

 

꽃도 한 철 뿐이며 날과 달도 차면 기울고 나무도 늙으며 바닷물도 줄어들어 들고 산도 무너지고 바위도 부서지는(옮겨가고) 이치 속에서 인간은 얼마나 더 보잘 것 없는 존재인가를 말합니다. 

 

성경의 이러한 진술은 우리들에게 두 가지를 제시해 줍니다. 

 

첫째 계몽주의 이래 인간이 대단한 업적을 쌓고 위대한 일이라고 말한 일들의 결과가 과연 인류에게 무슨 유익을 줄 수 있는지 얼마나 새로운 것들인가? 하는 물음에 성경은 회의적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삶이란 무엇인가?” "세계란 무엇인가?" 라는 본질적인 물음에서 볼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기술이라는 측면에서도 인간은 이제 겨우 자연에 이미 존재하는 물질이나 원리들을 발견해서 흉내 내는 정도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한다고 해도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이전에 그러한 물질의 결합이나 발견이 없었을 뿐이지 해아래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자연에는 아직 인류가 발견하지 못한 본질들과 아직 실체를 확인하지 못한 원리들이 무궁무진 합니다. 그러니 인간에게 보낼만한 무슨 위대한 찬사가 있겠습니까? 창세기 6장 대홍수 이전의 선조들은 수백년 혹은 일천년에 가까운 삶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대홍수는 인간의 그러한 장구한 삶의 지속성이 남긴 결과가 얼마나 참혹했는지에 대한 하나님의 판단이었습니다. 

 

둘째 영원하신 존재(하나님)를 발견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종교적, 철학적, 학문적, 예술적 활동들이 가지는 지향점입니다. 그것들은 제각기 자기 방식대로 길을 찾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것들은 참된 목적지를 찾지 못하여 방황하며 끝끝내 찾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원하신 존재이신 하나님은 그런 방식으로는 찾아질 수 없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성경만이 그것들의 길과 목적과 용도가 무엇인지 설명해 주며 동시에 참된 길이요 목적지가 어디인지 알려줄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믿음 안에서 거하며 받는 시련이나 절망이나 마음의 깊은 고뇌는 우리 인생에 해로운 것이 아니라 더 큰 은혜를 누릴 수 있는 혜택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위의 두 가지에 대해서 더욱 극적이며 절실하게 느끼고 받아들이는 기회가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본문이 말하는 것처럼 불편하고 비관적인 진술 가운데에서도 우리에게 선한 길을 제시할 것이란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