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 15절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개역개정]
"Lo, though he slay me, yet wil I trust in him"[GB]
"Though he slay me, yet will I trust in him"[KJV]
이 본문의 경우에 히브리어 [אל] 에 대한 해석의 문제를 해결하기 까다롭다. 한역들은 거의 대부분 Not 으로 번역하여 "내가 희망이 없노라"로 했다. 그러나 영역의 경우는 몇 개의 주요한 역본들은 "yet will I trust in him"으로 보고 있다.
조셉 카일의 경우 양쪽의 경우를 다 긍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이려 노력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특별히 그는 주요 역본들의 본문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비록 하나님이 나를 죽이실지라도 여전히 나는 그를 의지하리라"고 하였다.
그는 욥의 고백에 근거해서 "믿음의 견고성은 고난 말고는 어떤 것으로도 충분히 검증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서 "죽음과 소망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다. 죽음조차도 욥의 소망을 꺾지 못한다. 소망은 오히려 욥의 죽음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욥은 인생을 살아가는 중에 얻은 것보다 죽음에서 더 많은 삶을 소유했다. 하나님은 욥의 육체를 간단히 죽이실 수 있다. 보라 욥의 죽음 그리고 믿음을. '비록 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여전히 그를 신뢰하리라' 이 본문은 슬픔과 죽음을 넘어서는 믿음의 승리를 말한다."
욥의 심정을 나름대로 해석한다. "나는 주님께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시려고 결정하신 것을 알고 있다. 내가 하나님 말고는 아무것도 그분 이상으로 신뢰를 두지 않았다. 만일 하나님께서 내 육체를 소환하신다면 이는 그가 내 영혼을 구하시려는 것이다. 나는 덧없는 이 육체보다 하나님을 신뢰하리라. 죽음이 내 믿음의 발판에서 나를 떼어내지 못하며 하나님 안에 있는 내 소망을 끊어내지 못하리라"
하나님께 대한 신뢰란 무엇일까? 그것은 추상적이고 심미적인 마음의 상태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의 계명과 의무들에 대한 순종이며 그분께 대한 최선의 예배로 나타나야만 한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에 대해서 말할 때 가인의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과의 단절은 가장 큰 상실이다. 하나님이 가인을 형제의 살인자라 선언하셨을 때 " 이렇게 가인이 말했다. "창4:14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 "가인은 제사를 드렸으나 하나님이 그를 받지 않았다. 가인은 하나님의 면전에 나아갈 수 없게 되었고, 그는 그것을 가장 비참한 것으로 생각했다. 가인은 공적 예배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 가인은 출교 된 것이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정직한 마음을 드리는 일들은 위대하고 엄청난 과업에서 더욱 크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인간은 때때로 숨 쉬는 것만으로도 하나님께 불경의 죄를 범할 수 있다. 작고 사소한 일들 속에 더 오묘한 주의 역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