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글 긴여운/수상록

석양을 바라보며

소박한 나그네 2014. 9. 12. 22:24

이사야 30:10

   그들이 선견자들에게 이르기를 선견하지 말라 선견자들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바른 것을 보이지 말라 우리에게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


타락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입에서 터져 나온 말이다. 이것은 어떤 한 개인이나 몇 몇 특이한 무리들의 목소리가 아니다. 그 시대 교회의 실상이고 신앙의 수준이었다. 하지 말라와 하라는 대조되는 두 요구들은 끔찍한 내용들이다. 하지만 세련된 용어와 감동적인 분위기로 포장되어 대중들에게 선포되고 있다.

'선견하지 말라', '바른 것을 보이지 말라' ........'부드러운 말을 하라'[Helka : 아첨], '거짓된 것을 보이라'


그렇다면 선지자들은 어떠했는가?


렘23:26-28

   26거짓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이 언제까지 이 마음을 품겠느냐 그들은 그 마음의 간교한 것을 예언하느니라 27 그들이 서로 꿈 꾼 것을 말하니 그 생각인즉 그들의 조상들이 바알로 말미암아 내 이름을 잊어버린 것 같이 내 백성으로 내 이름을 잊게 하려 함이로다 28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꿈을 꾼 선지자는 꿈을 말할 것이요 내 말을 받은 자는 성실함으로 내 말을 말할 것이라 겨가 어찌 알곡과 같겠느냐.


마치 더 이상 교회로서의 생명을 다 상실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하나님의 역사는 보이지 않을지언정 멈추지는 않았다.


천년의 중세 기간 동안에 그리스도의 참 교회는 없었다고 하는 것도 올바른 표현이 아니다. 어느 시대에도 교회가 이 지상에서 사라진 적은 없다. 다만 하나님의 은혜가 간헐적으로 임했을 뿐이고 그 자취를 찾기가 어려웠을 뿐이다.  그런 중에도 진리를 나타냈던 피터 왈도, 존 위클리프와 존 후스 그리고 마틴 루터로부터 시작했고 요한 칼빈을 필두로 한 거대한 종교개혁의 물결들이 시대 속에서 진리를 나타내도록 부름받았던 수 많은 사역자들이 있었다.


바울 사도는  “수다한 사람들과 같이 말씀을 혼잡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말한다”(고후2:17)고 했다.

유럽 대륙에서와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흥황했던 개혁교회와 장로교회들, 뿐만 아니라 회중교회들이나 감독주의 교회들이 지금은 텅텅 비어서 소수의 늙은 노인들만이 남게 된 모습에 대해서 무엇을 배워야할지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성령 운동과 부흥의 열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유럽의 교회들이 죽은 교리와 과격한 고백적 신앙을 유지했기 때문에 교회가 쇠락했다고.. 그래서 우리는 이제 새로운 부흥의 불길을 일으킬 때라고 한다. 부흥하지 않는 교회는 서슴없이 죽은 교회라고 말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18-9세기 영국과 스코틀랜드를 거쳐 미국으로 건너간 부흥의 물결이 어떻게 교회를 혼잡케 했는지를 그들은 전혀 다른 시각을 갖고 있다.

교회에서 진리가 사라지고 그 진리를 포장하려 했던 수단들만이 난무하게 될 때, 교회는 어둠 가운데 길을 가게 되는 것이다. 사도는 “말씀을 혼잡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내는 것”이 자신이 사도로써 받은 사명이라고 믿었다.


이 시대 진리 파수의 과제는 신자들만의 몫도, 성직자들만의 몫도 아니고 우리 모두의 몫이고 누구에게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어떤 상황과 처지에서도 내가 진리를 선포하는 자가 되고  선포된 진리를 듣는 자리에 내가 있을 뿐이다. 전투적인 투쟁도 싸움도 아니요 도전이나 모험으로도 아니고 진리가 내 일상으로 들어와 아침에 눈을 뜨고 먹고 마시며 활동하는 모든 순간 그리고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 아니 꿈 속에서 조차도 가장 평범한 일상으로서 유지될 수 있어야겠다.


세상은 이미 석양이다. 곧 칠흙같이 밤이 머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