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ritan/조셉 카일

진리는 마음의 양식이고 이성의 자양분이다

소박한 나그네 2015. 11. 19. 08:35


욥12:11 입이 음식의 맛을 구별함 같이 귀가 말을 분간하지 아니하느냐.


"욥은 논적들의 교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의 신학'이라고 했다. 반면에 자신의 교리는 매우 분명하고 쉽다고 말한다. '서문'이 필요없다. 귀가 말을 분간하듯이, 입이 음식의 맛을 구별함과 같다"

"크리소스톰은 본문을 '귀가 말을 분간하며, 마음이 음식의 맛을 구별한다'로 번역했다. 귀가 그 말을 분간하듯이, 마음이 음식의 맛을 구별한다. 후자는 전자를 설명하는 것이다. 어떤 음식을 말하는가? '진리는 마음의 음식이고, 이성의 자양분이다' 그래서 진리는 먹고 마시기 좋은 음식에 비유된다. 진리가 없을 때가 기근이다.  진리가 올바르게 분간되지 않을 때 그 영혼은 굶주리게 된다. 말씀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영혼의 양식이다.  시편 34:8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어떻게 맛볼 수 있나? 그것은 마음의 일이요 마음의 묵상이며 그분을 믿음이다. '믿음은 영혼의 감별사이다' 믿음은 영혼의 입이다. 맛을 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그분의 약속과 살아계심을 음미하게 만들어 양식이 되게 한다."

시편 63:5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나의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나의 입이 기쁜 입술로 주를 찬송하되 6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새벽에 주의 말씀을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하오리니

"믿음으로 하는 묵상은 하나님에 대한 진미를 맛보는 부요한 방식이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그릇이고, 모든 약속들은 믿음을 위한 황제의 만찬이다.

그리스도께서도 "그를 보내신 자의 뜻을 행하는 것이 나의 양식이라'고 하셨다."

(Joseph Cary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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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본성은 하나님을 알도록 지음받았다고 했다. 누구나 그렇다. 하지만 이 지식은 진리를 통해 인도받지 않았을 때 로마서 1장이 말하듯 '하나님을 알되 헛된 지식으로 알고, 마음을 어둡게 만드는 지식이 된다'고 했다.  그것이 우상숭배든 혹은 허무주의로 가든 결국은 핑계할 수 없는 일이 되고 만다.  그러나 인간의 이성도 참된 믿음 위에 진리의 인도를 받는다면 온 자연 만물 속에서, 나무와 풀들,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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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음식을 맛보듯이 음성을 듣듯이 진리에 대해 묵상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이 점점 명료하게 알려질 수 있다. 믿음이 깊어진다는 것은 우리 편에서 볼 때 하나님의 뜻의 명료함을 더해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스데반 집사가 죽음에 임박했을 때 하나님 우편에 서신 예수를 보았던 것은 어떤 의미에서 그의 믿음의 최절정이 되었을 때 그리스도 예수를 보는 만큼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명료하게 되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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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말씀하셨다. "나는 선한 목자요,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안다"  주의 뜻을 찾느라 이리 저리 헤메여서는 안 된다. 진실된 말씀 앞에 귀를 기울이며 그 진미를 맛보는 것이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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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나의 양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