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ritan/조셉 카일

교리와 삶,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에 대하여

소박한 나그네 2015. 4. 24. 18:00

욥 11:4 "... 내 도는 정결하고"(My doctrine is pure)


성경이 교리인 것처럼 우리가 믿는 신앙은 교리라고 표현할 수 있다.  여기서 말씀에 '내 교리는 정결하다"는 의미에 대해서 요셉 칼은 그 내용을 풍부하게 풀어내고 있다.


"교리의 정결에는 그것이 가지는 귀중함(preciousness), 그리고 순수함(unmixedness), 혼합되지 않음(uncompoundednesse)이 있다.  그것을 복음의 진실함(simplicity of Gospel, 고후11:3)이라고도 말한다. 하나님 말씀에 인간적인 꾀(inventions)나 헛된 것들을 더하거나 혼합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오직 말씀만을 받는 것이다(nothing but it self). "


"정결한 교리(doctrine)는 정결(purifie)하게 하며, 거짓된 원리(principles)는 거짓된 실천을 가르친다.  굽은 규범은 굽은 삶을 만든다. 오염된 것은 오염시키기 쉽다. 순결한 것은 순결하게 만든다."


그는 우리 신앙의 주요한 두 가지를 (1) 교리의 순전함과 (2) 삶의 정결함을 꼽는다. 바리새인들을 예로 들어 전자를 가졌으나 후자를 갖지 못한 자라고 평한다.  "교리의 순전함을 가졌으나 삶의 정직성과 거룩은 결핍되었다"  이 둘이 분리되지 말아야 할 것을 강조한다.


"교리의 순전함과 삶의 정결함이 한 사람 안에 함께 나타날 때, 그는 복된 사람이다"


그러면서 두 가지를 경고하고 있다.


"우리는 삶이 정결한 사람에게서 불건전한 교리를(unsound doctrine) 배우기 쉽고, 교리가 건전한 사람에게서  부정한 삶을 모방하기 쉽다" 


일반적인 시각에서 존경할만하고 배울점이 많은 사람이라 해서 그들이 건전한 혹은 참된 교리를 가졌다고 기대하면 안될 뿐만 아니라 건전한 교리를 가졌다고 해서 그것이 그의 삶의 건전성을 보장해 준다고 믿어서도 안 된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참된 진리는 경건한 삶을 동반한다고 해야 한다.  참된 진리는 언제나 그것을 담지한 사람을 삶에서 향상시키며 도리에 순종하도록 이끈다. 하지만 그 역은 불가능하다.


그는 삶에서 "깨끗함"(Bar)을 하나님의 선택론과 연결시킨다.


"하나님의 선택은 선악을 고려하지 않고 이루어진다(without respect to good or evil). 대상을 보지 않으신다(did not look upon mankinde)." 로마서 9:11절을 근거로  "하나님의 선택은 행위로 말미암지 않으신다(Gods election is not upon actions)."  그리고 정결한 자를 택하신 것이 아니라 정결케 하시려고  택하신다(to make them clean). 그들이 다른 이들보다 정결하기 때문에 택하신 것이 아니다(cleaner then others)."


"선택의 은혜는 성화의 은혜로 말미암아 지도받지 않고 성화의 은혜로 향하게 하며 인도한다"는 명문을 제시한다.



11:6절 "하나님의 지혜"에 대해서는 더 아름다운 문장들이 담겨져 있다.


"하나님의 행사는 자신 안에 있는 규범으로 이루어지며, 당신의 의로우신 의지가 곧 그의 규범이다(his righteous will is his rule)."


"당신의 의지가 곧 율법이다(his own will is his law).... 그가 행하신 것이 곧 옳은 것이다. 하나님의 생각은 그 마음의 영원한 작정이다. 그는 결정하고 생각하시지 않고 그의 생각이 곧 결정이다. 그의 생각은 어느 것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서 있다."


하나님의 지혜를 사람이 어찌 감당하고 받을 수 있을까? 은혜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지혜를 온전히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는 지혜의 대양에서 그저 몇 방울을 받을 수 있다(but drops).  우리는 주둥이가 좁은 병이다(narrow-mouthed vessels)"



매 페이지마다 그의 손끝에서 나오는 신앙 교리들에 대한 해석과 명문들이 늘 진도를 늦추게 만든다. 퓨리탄들의 생애를 볼 때 그들의 삶을 속속들이 알기는 어렵다. 감동적인 예화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는지 하는 것들도 좋겠으나 결국엔 그들이 남겨놓은 작업들 속에 담긴 진리에 대한 이해와 명확한 교리적 입장들이 더 존중받아야 한다.   유명한 이름으로 알려진 퓨리탄들 가운데에는 그의 교리적 해석이 장로교신앙과 결코 화합할 수 없는 이들도 있으니 잘 분변해야 할 것이다. 유명하다는 것이 안전성을 확보해 주는 틀이 될 수 없다.